[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46문.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무엇입니까?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그리스도의 비하(낮아지심)가 가진 참된 의미 (대요리문답 제46문)
우리는 앞선 문답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와 제사장, 그리고 왕으로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고 통치하시는지 그 위대한 삼중직을 배웠습니다. 오늘부터는 그 직분을 이루시기 위해 주님이 걸어가신 ' 상태와 여정'을 살펴보려 합니다. 그 첫 단추가 바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비하, Humiliation)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단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만을 말할까요?" 혹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면, 그동안 신성은 잠시 사라졌던 것일까요?"와 같은 질문들이 생기곤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Westminster Larger Catechism) 제46문은 이 위대한 신비의 커튼을 열어, 창조주가 피조물의 자리로 내려오신 영광의 비움이 무엇인지를 명쾌하게 설명해 줍니다.
1. 질문: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무엇입니까?
답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그리스도께서 잉태되어 태어나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죽으신 후 부활하시기까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영광을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여 비천한 형편에 계셨던 것입니다.(빌 2:6-8; 눅 1:31; 고후 8:9; 행 2:24).
2. 낮아지심의 범위: 십자가를 넘어 전 생애를 관통하는 비하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만 국한하여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대요리문답은 그 경계를 훨씬 넓게 잡습니다.
잉태부터 부활 전까지: 주님의 낮아지심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시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전 생애가 비하의 연속: 비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 인간의 한계 속에서 목수의 아들로 사신 것,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고 무덤에 갇혀 부활하시기 직전까지의 모든 전 생애가 곧 그리스도의 처절한 낮아지심이었습니다.
3. 낮아지심의 본질: 신성의 포기가 아닌 '영광의 비움'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에서 예수님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고 말합니다. 신학에서는 이를 '케노시스(Kenosis)'라고 부르는데, 자칫 오해하면 안 되는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신성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비우셨다는 것은 하나님으로서의 성품(신성)을 포기하거나 분실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은 땅에 계실 때도 여전히 온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낮아지심을 입으신 것: 진정한 의미는 자신의 신성 위에 '인성'이라는 제한적이고 연약한 옷을 덧입으신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과 기쁨을 가리심: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마땅히 누리셔야 할 본연의 가시적인 영광과 기쁨을 스스로 감추시고, 인간의 비천함 속으로 자신을 자발적으로 밀어 넣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4. 종의 형체와 비천한 형편: 자발적인 가난
왕이신 주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지배자로 군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참 사람이 되셨고, 스스로를 낮추셨습니다.
스스로 택하신 가난: 주님은 세상의 화려한 궁궐이나 권력의 중심지가 아니라, 가장 낮고 소외된 가난한 자리로 오셨습니다.
종의 형체: 도움을 받아야 할 비천한 아기의 모습으로, 배고픔과 피곤함과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는 연약한 인간의 형편 속에서 종처럼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억지로 떠맡은 것이 아니라, 구속 언약에 따른 철저하고 자발적인 순종이었습니다.
[교훈과 적용] '우리를 위해' 낮아지신 사랑의 신비
대요리문답 제46문이 전하는 가장 가슴 벅찬 구절은 바로 "우리를 위해"라는 단어입니다. 주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비천한 자리까지 내려오신 목적은 단 하나, 바로 택함 받은 자녀들의 구원 때문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 (가장 높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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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으로 잉태되심, 비천한 삶, 십자가의 죽음 (가장 낮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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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인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