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39문 중보자는 왜 사람이셔야 했습니까?

 우리와 같은 몸으로 찾아오신 이유: 중보자가 반드시 '사람'이어야 했던 이유 (대요리문답 제39문)

앞선 대요리문답 제38문을 통해 우리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중보자가 왜 '무한한 권능을 가진 하나님'이셔야 했는지 배웠습니다. 신성은 주님의 고난과 순종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대의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중보자는 왜 반드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어야만 했을까요?" 하나님이 하늘 보좌에 그대로 앉으신 채 말 한마디로 우리를 용서해 주실 수는 없었을까요? 왜 굳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야 했을까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Westminster Larger Catechism) 제39문은 그리스도의 '인성(Human nature)'이 우리의 구원과 신앙생활에 왜 절대적인 필수 조건인지를 가슴 벅찬 복음의 메시지로 설명합니다.

1. 질문: 중보자는 왜 사람이셔야 했습니까?

답변: 중보자가 사람이셔야 했던 이유는, 우리의 본성을 향상시키시기 위해, 율법에 순종하시기 위해, 우리의 본성 안에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고 간구 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기 위해, 그리하여 우 리가 양자가 되고 위로를 받으며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히 2:16, 갈 4:4, 히 2:14, 7:24∼25, 4:15, 갈 4:5, 히 4:16)

2. 죄지은 본성 안에서 형벌을 당하시다

하나님의 엄위하신 공의는 "죄를 지은 그 본성(인간)이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천사나 제3의 피조물이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형벌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 우리의 본성 안에서 고난받으심: 예수님은 진짜 인간의 몸(본성)을 입고 오셔서,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율법의 모든 저주와 처절한 죽음의 고난을 '인간으로서' 직접 당하셨습니다(히 2:14).

  • 우리를 위한 중보 기도의 근거: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고난을 겪으셨기에,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인간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중보자로서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간구하고 계십니다(히 7:24-25).

3. 실패한 아담을 대신한 '완전한 순종'

첫 번째 아담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데 완전히 실패하여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갔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대표자인 두 번째 아담은 인간의 자리에서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내야만 했습니다.

  • 율법 아래 나셔서 순종하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피조물인 인간의 자리로 낮아지사, 평생토록 하나님의 율법에 온전히 복종하셨습니다(갈 4:4). 이로써 아담의 불순종을 지우시고,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롬 5:19).

4. 타락한 인간 본성의 업그레이드와 '양자 됨'

중보자가 사람이 되신 것은 단순히 죄 형벌을 대신 받는 것 이상의 놀라운 영적 신분 상승을 가져왔습니다.

  • 우리의 본성을 향상시킴: 죄로 오염되고 추해진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입어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스럽게 격상되었습니다. 성도는 이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로 그 가치가 완전히 향상되었습니다( can 2:16; 벧후 1:4).

  • 하나님의 자녀(양자)가 되는 권세: 하나님의 친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형제가 되어주심으로, 우리는 율법의 종노릇 하던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당당한 '양자(자녀)'로 입양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갈 4:5).

5. 최고의 위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는 주님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을 관념적으로만 아시는 분이라면, 우리는 고난당할 때 주님께 다가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 친히 겪으신 동정(Sympathy):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육체와 영혼을 가지셨기에 우리가 겪는 배고픔, 피로, 질병, 슬픔, 배신, 유혹을 직접 다 아십니다. 죄만 없으실 뿐, 인간의 한계를 고스란히 겪으셨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깊이 동정하고 체휼하십니다(히 4:15).

  •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이처럼 따뜻하고 완벽한 인간 중보자가 계시기에, 우리는 죄를 짓고 넘어졌을 때나 극심한 고통 중에 있을 때 두려워 숨지 않습니다. 언제든 나를 이해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히 4:16).

[교훈과 적용] 나를 가장 잘 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

대요리문답 제39문은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 따뜻한 사랑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1.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깊은 고독과 슬픔, 억울함을 겪고 계십니까? 참 인간으로 이 땅을 사셨던 예수님은 당신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당신을 완벽하게 동정하시는 주님 품에 가만히 숨으십시오.

  2.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의 당당함을 누리십시오: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덕분에 우리의 본성은 향상되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정죄감이나 영적 패배주의에 갇혀 살지 말고, 왕의 자녀다운 거룩함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3. 매일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기독교는 무서운 신 앞에 벌벌 떨며 공포로 나아가는 종교가 아닙니다. 나를 위해 대신 고난받으시고 율법을 이루신 '사람 예수'의 공로를 힘입어, 매 순간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예비된 위로와 혜택을 마음껏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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