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41문 우리의 중보자를 왜 예수라고 부릅니까?
그 이름에 담긴 구원의 비밀: 중보자를 '예수'라 부르는 이유 (대요리문답 第41문)
우리는 앞선 문답들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왜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어야 하는지 그 거대하고 정교한 신학적 신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위대한 중보자의 구체적인 '이름'에 주목할 차례입니다.
왜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마리아와 요셉에게 아기의 이름을 다른 어떤 멋진 이름도 아닌 오직 '예수'라고 지으라고 명하셨을까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Westminster Larger Catechism) 제41문은 복음의 핵심이자 성도가 가장 사랑하는 그 이름, '예수'에 담긴 뜻과 구속사적 의미를 명쾌하게 풀어줍니다.
1. 질문: 우리의 중보자를 왜 예수라고 부릅니까?
답변: 우리의 중보자를 예수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2. '예수'라는 이름의 어원과 복음적 의미
'예수'라는 이름은 단순히 당시 유대 사회에서 흔히 쓰이던 평범한 이름 중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설계도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약의 히브리어 이름인 '여호수아(Joshua)' 또는 '예수아'의 헬라어(그리스어) 형태입니다. 그 구체적인 의미는 바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 천사는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명확한 이유를 밝힙니다. 즉, 그 이름 자체가 곧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자 사명(Mission)이었습니다.
3. 구약의 여호수아와 신약의 예수: 그림자와 실체
성경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인물과 신약의 예수님을 연결하는 '구속사적 렌즈'가 필요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약의 거대한 역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여호수아: 구약의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건져내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한 구원자였습니다.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예수: 신약의 '예수'는 구약의 여호수아가 보여준 구원의 진정한 실체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토가 아니라, 죄와 사망의 노예 상태에서 건져내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직접 인도하십니다. 구약의 여호수아가 육적 구원의 그림자였다면,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하시는 참된 실체이십니다.
[교훈과 적용] 은혜 언약 안에서 누리는 그 이름의 능력
'자기 백성'을 끝까지 구원하시는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모호하게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은혜 언약 안에서 창세 전에 택함 받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다면, 주님은 여러분을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 자기 이름을 걸고 끝까지 책임지실 것입니다.
환경이 아닌 '죄'에서의 구원임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를 단순히 가난이나 질병, 세상의 실패에서 건져내는 정치적·기복적 구원자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영원한 파멸로 몰고 가는 근본 원인인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내 안의 죄를 미워하고,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신 은혜를 누리십시오.
그 이름을 대할 때마다 겸손히 엎드리십시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이름의 뜻처럼,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내 공로나 열심을 의지하려는 교만을 내려놓고, 오늘도 오직 유일한 구원의 이름이신 '예수'만을 의지하며 승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