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47문. 그리스도께서는 잉태되어 태어나실 때 자신을 어떻게 낮추셨습니 까?

 구유에 누우신 왕: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때 마주한 비하의 신비 (대요리문답 제47문)

우리는 앞선 제46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자발적인 '낮아지심(비하)'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그 구체적인 첫걸음으로, 주님이 이 땅에 잉태되어 태어나시는 순간에 얼마나 자신을 낮추셨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우주의 창조주께서 왜 화려한 왕궁이 아닌 초라한 마구간을 선택하셨을까?"

"예수님의 탄생은 단지 따뜻하고 낭만적인 동화 같은 이야기일까?"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Westminster Larger Catechism) 제47문은 크리스마스의 낭만 뒤에 숨겨진,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처절하고도 엄숙한 '낮아지심'의 신비를 성경적으로 조명합니다.

1. 질문: 그리스도께서는 잉태되어 태어나실 때 자신을 어떻게 낮추셨습니까?

답변: 그리스도께서는 잉태되어 태어나실 때 자신을 다음과 같이 낮추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품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심에도, 때가 찼을 때 기꺼이 비천한 신분의 여자에게서 잉태되어 태어나심으로 사람이 되셨으며, 보통 사람들보다 더 열악하고 굴욕적인 여러 형편에 처하셨습니다.(요 1:14,18; 갈 4:4; 눅 2:7). 

2. 원래 신분: 성부의 품속에 계신 영원한 아들

예수님의 탄생이 왜 '낮아지심'인지를 이해하려면, 그분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어떤 분이셨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 동등한 신성: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하기 시작한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본질이 같고 동등한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셨습니다.

  • 친밀함과 영광의 자리: 성경은 그분이 성부 하나님의 '품속'에 계셨다고 묘사합니다(요 1:14, 18). 이는 무한한 사랑과 기쁨, 온 우주의 찬양과 영광을 한몸에 받으시던 자리였습니다. 그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땅으로 내려오신 것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비하입니다.

3. 철저한 계획: 때가 차매 기꺼이 오시다

예수님의 비천한 탄생은 결코 어쩌다 생긴 우연이나 비극적인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 치밀한 구속사적 타이밍: 성경은 예언된 '때가 찼을 때' 예수님이 오셨다고 증언합니다(갈 4:4). 이는 인류의 타락 직후부터, 아니 영원 전부터 삼위 하나님 사이에서 작정되고 치밀하게 계획된 사건이었습니다.

  • 자발적인 순종: 주님은 억지로 떠밀려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의 비천함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4. 비천한 신분의 여자에게서 나심

주님은 이 땅의 어머니를 선택하실 때도 인간적인 조건이나 화려한 배경을 철저히 배제하셨습니다.

  •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자리: 주님의 육신을 태에 품은 마리아는 유대 사회에서 알아주지 않는 나사렛이라는 동네의 비천한 처녀였습니다.

  • 마리아의 고백: 마리아 스스로도 찬가를 통해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고 고백할 만큼, 주님은 철저히 사회적·경제적으로 가장 낮은 신분의 계층을 통해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눅 1:46-48).

5. 보통 사람들보다 더 열악하고 굴욕적인 형편

일반적인 아기들도 따뜻한 방과 축하 속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온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의 탄생 환경은 보통의 인간들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거칠었습니다.

  • 마구간과 구유 (눅 2:6-7): 만삭의 몸으로 들어갈 방 한 칸을 찾지 못해 짐승들이 묵는 차가운 마구간에서 출산하셔야 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 예수가 누운 자리는 포근한 요람이 아니라 짐승의 밥그릇인 '구유'였습니다.

  • 피난민이 되신 왕: 탄생의 기쁨도 잠시,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헤롯 왕의 칼날을 피해 낯선 이국땅인 애굽으로 밤중에 야반도주하며 비참한 난민의 삶을 시작하셔야 했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위협을 피해 도망치셔야 했던 이 현실 자체가 엄청난 굴욕이었습니다.

[교훈과 적용] 구유에 누우신 주님이 주시는 위로

대요리문답 제47문이 보여주는 주님의 탄생화(畵)는 우리에게 깊은 영적 묵상과 위로를 줍니다.

  1. 가장 낮은 곳까지 찾아오시는 사랑을 신뢰하십시오: 예수님은 화려한 왕궁에 계시지 않고 가난한 마구간, 냄새나는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비천하고 소외된 자라 할지라도 주님이 친히 찾아가 만나주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 삶이 너무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 구유에 누우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2. 굴욕과 결핍 속에서도 감사할 이유를 찾으십시오: 우리의 왕이신 주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열악함과 굴욕, 결핍을 경험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가난, 거절감, 억울한 형편을 주님은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주님이 먼저 그 길을 통과하셨기에, 우리는 어떤 형편 속에서도 위로를 얻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3. 겸손의 왕을 본받아 낮아짐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기독교 신앙은 더 높아지고, 더 화려해지고, 더 많이 가지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기꺼이 비천해지셨다면, 그분의 백성인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 낮아지고 섬기는 자리를 기쁨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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