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제60문.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본성의 빛을 따라 사는 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복음을 못 들은 좋은 사람도 구원받을까? 종교다원주의와 오직 예수 (대요리문답 제60문)
신앙생활을 하거나 비기독교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반드시 마주치는 가장 뜨겁고 민감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처럼 복음을 들어본 적도 없고 예수님을 알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예수님은 몰라도 양심껏 착하게 살고, 자신이 믿는 종교에 신실했던 사람들도 지옥에 가나요?"
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다원주의가 주류를 이루는 오늘날, 이 질문에 기독교가 내놓는 답은 종종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Westminster Larger Catechism) 제60문은 인간의 감정적 타협을 배제하고, 성경이 선포하는 엄위한 공의와 구원의 유일한 법칙을 선명하게 제시합니다.
1. 질문: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 사람들이 본성의 빛을 따라 사는 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답변: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본성의 빛이나 그들이 믿는 종교의 율법을 따라 아무리 부지런하게 노력하며 산다 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그의 몸된 교회의 유일한 구주이십니다.(롬 10:14, 살후 1:8∼9, 엡 2:12, 요 1:10∼12, 8:24, 막 16:16, 고전 1:20∼24, 요 4:22, 롬 9:31∼32, 빌 3:4∼9, 행 4:1∼2, 엡 5:23)
2. 양심과 타종교의 노력이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이유
대요리문답은 인간이 가진 이성(본성의 빛)이나 종교적 열심이 왜 구원에 무력한지 명확한 한계를 짚어냅니다.
오염된 본성의 빛: 인류의 타락 이후 인간의 이성과 양심은 죄로 심각하게 오염되었습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도리어 십자가의 복음을 미련한 것으로 여길 뿐입니다(고전 1:21, 23).
방향을 잃은 종교적 열심: 다른 종교를 믿으며 제아무리 부지런하고 도덕적인 노력을 기울여도 그것은 진리가 배제된 '알지 못하는 신'을 향한 맹목적인 예배에 불과합니다(요 4:22). 기준에 도달할 수 없는 파산한 상태에서 행하는 인간의 의는 구원에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빌 3:8).
3. 구원의 엄격한 성경적 원리: 복음 전파의 영광
우리는 흔히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를 안 믿어서' 벌을 받는다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신학적 사실은 다릅니다.
죄인은 복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기 죄' 때문에 멸망합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은 복음을 거절해서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범한 자기 자신의 죄 때문에 멸망하는 것입니다(롬 2:12).
여전히 '행위 언약' 아래 있는 인생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 은혜 영역 밖에 머무는 모든 자연인은 아담의 '행위 언약' 아래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엡 2:12).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지켜내야만 살 수 있는 상태인데, 이를 행할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으므로 결국 영원한 형벌이라는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살후 1:8-9).
독점적인 구원의 이름: 성경은 구원의 길을 결코 넓게 열어두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 4:12). 예수님은 온 세상 만인의 무조건적인 구주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몸 된 '교회'의 유일한 구주이십니다(엡 5:23). 이 때문에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를 듣게 하는 사역이 무엇보다 영광스럽고 시급한 것입니다(롬 10:14).
4. 복음을 듣지 못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불의한가?
인간적인 동정심이 발동하면 "기회도 안 주고 정죄하시는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라는 원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셔야 할 아무런 '빚'이나 '의무'가 없으십니다.
모든 인류는 이미 하나님을 반역한 사형수들입니다. 왕이 반역자들을 전부 처형한다고 해서 그것을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 중 일부에게 복음을 들려주시고 구원의 기회를 베푸시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전적인 자비이자 무한한 은혜입니다.
💡 예외적인 경우: 유아와 지적 장애인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면 스스로 복음을 듣고 반응할 지적 능력이 없는 '낙태된 태아나 영아 때 죽은 아이들', 그리고 '외적인 부르심을 이해할 수 없는 지적 장애인'들은 어떻게 될까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0.3)과 신학자 R.C. 스프로울은 하나님의 특별한 주권적 은혜를 열어둡니다.
성령님은 외적인 복음 전파 없이도 당신이 기뻐하시는 때와 장소와 방법대로 역사하실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들을 능력이 없는 택자들을 하나님께서 당신만의 신비로운 내적 사역으로 구원하신다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단, 이것은 하나님의 비상시기(비정상적인 상황)에 행하시는 주권적 예외일 뿐이므로, 정상적인 지각을 가진 비기독교인들이 복음 없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오해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거스르는 성도의 사명 ]
대요리문답 제60문이 선포하는 기독교의 유일성은 우리에게 무거운 책임감과 복음의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모든 종교는 같다"는 시대의 거짓말에 속지 마십시오: 세상은 기독교를 향해 포용력이 없고 편협하다고 비난하며, 산에 오르는 길은 달라도 정상에서 만나듯 모든 종교는 통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적 파산 상태인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다리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요 14:6). 이 독점적 진리를 타협 없이 파수하십시오.
복음 전파의 시급성을 깨닫고 전도에 힘쓰십시오: 복음을 듣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어 결국 행위 언약의 엄중한 심판 아래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롬 10:14). 내 가족과 이웃의 영혼을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유일한 살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려주는 신실한 복음의 통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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