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68문 택함 받은 사람들만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습니까?
가라지의 종교 행위와 알곡의 회심: 성령의 일반적 역사 vs 효과적인 부르심 (대요리문답 제68문)
우리는 앞선 제67문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지성을 밝히시고 의지를 새롭게 하시는 '효과적인 부르심(내적 소명)'의 신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교적 반응이 다 효과적인 부르심의 결과일까요?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심지어 은사를 체험하고도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복음을 전해도 꿈쩍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전도를 포기해야 할까?"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Westminster Larger Catechism) 제68문은 구원론에서 가장 분별하기 힘든 영역인 '성령의 일반적인 역사'와 '효과적인 부르심'의 차이를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아울러 외적 부르심(복음 전파)이 왜 여전히 시급하고 중요한지 그 균형 잡힌 성경적 해답을 제시합니다.
1. 질문: 택함 받은 사람들만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습니까?
답변: 모든 택함 받은 사람, 오직 그들만이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습니다. 비록 택함 받지 않은 사람들도 말씀 선포와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반적인 일들을 통해 외적으로 부름받을 수도 있고, 종종 외적 부름을 받지만, 그들은 그들에게 제공되는 은혜를 고의로 무시하고 경멸하기 때문에, 당연히 불신앙에 내버려지고, 결코 예수 그리스도께 참되게 나아가지 못합니다.(행 13:48, 마 22:14, 7:22, 13:20∼21, 히 6:4∼6, 요 12:38∼40, 행 28:25∼27, 요 6:64∼65, 시 81:11∼12)
2. 성령의 일반적인 역사: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종교적 체험
성경은 거듭나지 못한 유기자(택함 받지 못한 자)들에게도 성령의 일시적이고 일반적인 영향력이 임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히 6:4-6). 이를 '성령의 일반적인 역사'라고 부릅니다.
[ 성령의 일반적 역사가 미치는 범위 ]
지성적 자극 → 죄를 깨닫고 종교적 진리에 동의함 (히 6:4)
감정적 변화 → 말씀을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곧 넘어짐 (마 13:20-21)
구원을 주지 못하는 역사: 성령의 일반적인 역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도덕적으로 삶을 개혁하게 하며, 사회적인 선행이나 종교적 은사를 행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마 7:22).
고의적인 거부와 경멸: 그러나 이 상태는 영혼이 근본적으로 거듭난 상태가 아닙니다. 마음의 중심(의지)이 갱신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에게 제공되는 복음의 은혜를 고의로 무시하고 경멸합니다(시 81:11-12). 결국 새로 거듭남(중생)이 없이는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구주로 고백할 수 없으며, 당연히 불신앙의 자리에 내버려 지게 됩니다.
3. 지상에서 시작되는 영원한 연합: '운명 공동체'
오직 택자만이 성령의 효과적인 부르심을 통과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실제적이고 나뉠 수 없는 연합을 이룹니다. 이 연합은 관념이 아니라 완전한 '운명 공동체'가 됨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사건 = 나의 사건: 부부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듯, 주님과 묶인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 됩니다. 주님의 승리가 고스란히 나의 승리로 발급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실재하는 관계: 우리는 흔히 머리로 이해할 수 없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연합을 '비현실적인 상상'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실체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실재적(Real)이며 확고합니다. 이 연합은 불가분적이며 영구적입니다.
4. 외적 부르심과 내적 부르심의 위대한 오케스트라
그렇다면 "오직 택자만 내적으로 부르심을 받는다면, 굳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외적 부르심'이 왜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대요리문답은 이 둘의 관계를 매우 신실하게 연결합니다.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내적 부르심)은 사람들의 복음 전파(외적 부르심)를 수단으로 하여 임합니다.
[ 전도자의 복음 선포 ] ──→ (외적 부르심: 수단)
[ 성령의 주권적 역사 ] ──→ (내적 부르심: 효력 발생)
[ 영혼의 거듭남과 회심 ]
복음 전파의 절대적 필요성: 하나님은 사람의 복음 전파를 통해 효과적인 부르심을 이루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입술을 통한 복음 선포 없이는 아무도 들을 수 없고, 믿을 수 없으며,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4).외적 부르심의 가치와 중요성을 절대로 축소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교훈과 적용] 전도자의 겸손과 자기 신앙의 점검
대요리문답 제68문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들의 태도를 교정해 주고, 우리 자신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① 복음을 전할 때 낙심하지도, 우쭐대지도 마십시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거부한다고 해서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이 거부하는 것은 내 말재주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거절하는 그들의 완악한 본성 때문입니다. 반대로 내 전도를 통해 누군가 회심했다고 해서 우쭐대며 내 공로를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택자에게 행하신 전능하신 '효과적인 부르심'의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맡겨진 복음 전파의 사명에 묵묵히 순종할 뿐입니다.
② 외형적인 종교 행위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고, 성경 지식이 풍부하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선행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거듭나지 않은 가라지에게도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성령의 일반적인 역사'일 수 있습니다.
나는 과연 복음의 은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내 의지가 새롭게 되어 죄를 미워하고 주님의 다스리심에 즐거이 순종하고 있습니까? 외적인 부름을 넘어 내 마음에 복음의 도장을 찍어주신 효과적인 부르심의 흔적을 날마다 확증하며, 그리스도와의 영광스러운 운명 공동체로 살아가는 참된 알곡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포스팅이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