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85문. 죽음이 죗값이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모든 죄를 용서받은 의인들은 왜 죽음에서 구함 받지 못합니까?
"죄 용서받은 성도들이 왜 여전히 죽음을 겪어야 할까?" 성도의 죽음에 담긴 반전의 신비 (대요리문답 제85문)
앞선 제84문에서 우리는 아주 엄중한 법칙을 배웠습니다. 바로 "죽음은 죄의 대가(형벌)"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필연적으로 아주 날카로운 신앙적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모든 죄를 대신해 죽으셨고, 나는 완벽하게 죄 용서를 받아 의인이 되었는데... 왜 의인인 나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죽음의 과정을 통과해야 하지?"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다면, 예수 믿는 사람은 죽지 않고 곧바로 천국으로 승천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Westminster Larger Catechism) 제85문은 이 깊은 질문에 대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복음의 답변을 제시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도의 죽음은 더 이상 '형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을 어떻게 저주에서 축복으로, 파멸에서 영광으로 바꾸어 놓으셨는지 그 놀라운 반전의 신비를 풀어드립니다.
1. 질문: 죽음이 죗값이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모든 죄를 용서받은 의인들은 왜 죽음에서 구함 받지 못합니까?
답변: 의인들은 마지막 날에 죽음 자체에서 구해지며, 죽을 때조차도 죽음의 쏘는 것과 저주로부터 구해집니다.
비록 그들이 죽더라도 그 죽음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말미암은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이 죽을 때에 그들이 죄와 비참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며, 이때 그들이 영광 안에서 그리스도와 더 깊이 교제하게 하시고 그 영광 안의 교제로 들어가게 하십니다.(고전 15:26, 55∼57, 히 2:15, 사 57:1∼2, 왕하 22:20, 계 14:13, 엡 5:27, 눅 23:43, 빌 1:23)
2. 독침이 빠진 호랑이: 성도의 죽음은 형벌이 아니다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은 그의 저서에서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죽음이 죽었다(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라는 위대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형벌로서의 죽음'은 완전히 사망 선고를 받았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사망의 '쏘는 것(독침)'은 바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법정적 형벌과 저주를 의미합니다. 벌침이 빠진 벌이 더 이상 사람을 쏠 수 없듯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독침을 대신 맞아 피 흘리셨기 때문에 성도가 맞이하는 죽음에는 저주나 형벌이 단 1%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성도는 죽음 '없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독침이 빠진 죽음이라는 안전한 '과정'을 통과하여 구원의 최종 단계로 나아갑니다.
3. 하나님이 성도의 죽음을 허락하시는 3가지 사랑의 이유
하나님이 의인된 우리에게 즉각적인 승천 대신 육체의 죽음을 통과하게 하시는 이유는, 그 죽음의 순간조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① 죄와의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주시기 위해 (해방)
성도는 이 땅에서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죄의 잔재와 피 터지는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롬 7장). 육체의 죽음은 이 지긋지긋한 죄와의 싸움에서 성도에게 '최종 승리'를 선언해 주는 순간입니다. 죽음을 통과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죄를 짓고 싶어도 절대 지을 수 없는 완벽하게 거룩하고 깨끗한 존재(영화)로 영혼이 변화됩니다.
② 이 세상의 모든 고난과 비참을 졸업시키기 위해 (안식)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계 14:13)
타락한 세상 속에서 성도는 질병, 이별, 경제적 결핍, 억울함 등 수많은 비참을 겪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성도의 죽음은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내 품에 와서 편히 쉬어라" 하시는 영원한 안식으로의 초청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죽음을 '잔다'고 표현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말합니다(시 116:15).
③ 그리스도와 눈과 눈을 맞추는 영광의 교제를 위해 (연합)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였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빌 1:23)
이 땅에서 우리는 말씀과 기도라는 거울을 통해 주님을 희미하게 만납니다. 그러나 죽음은 시공간의 한계를 깨뜨리고 성도의 영혼을 낙원에서 주님과 얼굴을 맞대어 보는 가시적이고 더 깊은 영광의 교제로 인도합니다(눅 23:43). 주님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우주에서 가장 황홀한 리셉션 룸으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죽음입니다.
[교훈과 적용] 죽음의 공포를 넘어 최고의 소망을 품으라
대요리문답 제85문이 밝혀주는 죽음의 신비는 성도가 죽음을 대하는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습니다.
죽음의 공포라는 사탄의 노예노릇을 당장 끝내십시오 (히 2:15) 예수 믿으면서도 죽음이 두려워 벌벌 떠는 것은 복음의 능력을 제 제한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죽음은 파멸이 아니라 거룩한 이사입니다. 주님이 독침을 다 뽑아 놓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며 절망하지만, 성도는 가장 찬란한 시작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어 담대하게 오늘을 사십시오.
사랑하는 성도의 죽음 앞에서 절망하지 마십시오 먼저 믿음 안에서 떠나보낸 가족이나 지체가 있습니까? 인간적인 이별의 슬픔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세상 사람들처럼 소망 없는 자같이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지금 죄와 인생의 모든 비참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주님과 가장 깊은 영광의 교제를 누리며 최고의 행복 속에 안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죽음의 완전한 파멸'을 소망하십시오 지금은 비록 성도가 영혼의 안식을 위해 육체의 죽음을 잠시 통과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마지막 재림의 날에는 우리의 육체까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죽음이라는 존재 자체가 완전히 우주에서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고전 15:26). 이 완벽한 승리의 타임라인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 부활과 영광의 소망을 꼭 붙잡고, 오늘도 눈물 골짜기 같은 세상을 넉넉한 승리자로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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